빚기 나는 지금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에 앉아 있다. 창가의 가장자리에 앉아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며 창문을 통해 거리를 오고가는 사람들을 본다. 그들의 옷차림과 발걸음의 속도, 어깨에 둘러맨 가방의 크기와 손에 들려 있는 장바구니의 내용물 등을 유심히 살펴본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상상하고, 상상 속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이야기를 짓고 쓰는 일이 바로 나의 업이기 때문이다. 나는 연극을 쓰고 만드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 직업 연극인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연극에 대해 줄곧 생각하거나, 연극과 연관을 지어 사고하는 경우가 많다. 연습을 하거나 공연을 마치고 나면 집에 돌아오고 다시 출근하는 업무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작품에 대한 생각만큼은 정해진 출퇴근시간이 없다. 끝도 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 불면의 밤을 보내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말도 못하게 예민해지곤 한다. 이런 날들이 계속되다보면 연극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다. 연극과 관련하여 일을 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나에게 연극이라는 예술을 창작하는 행위는 요리를 하는 일과 매우 닮아 있다. 요리에 필요한 여러 재료들을 잘 다듬고, 재료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맛을 충분히 살릴 수 있도록 조리하여 이를 먹기 좋게 담아낸다는 점에서 그렇다. 따라서 잘 차려진 한 상을 관객과 즐겁게 나눠먹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멋진 연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미루어보면 내가 요리하는 것에 커다란 흥미를 느끼고, 무척 애정하는 취미라는 것을 알아차렸으리라. 2020년, 현재 나의 연극은 금지되었다. 사람들은 모임을 자제해야 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 되도록 가서는 안 된다. 이는 연극을 통해 관객을 만날 수 있는 환경이 극히 제한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으로서 타인의 안전과 건강을 고려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공연을 한다고 할 때, 극장을 찾아올 관객들의 안전을 충분히 담보할 수 있는가하는 질문에 나는 그렇다고 할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른 방식으로 나의 연극을 계속하기로 했다. 요리가 갖고 있는 속성 안에서 나는 연극을 계속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 시작하는 나의 연극은 술을 담그는 것이다. 단 한 사람을 위한 술을 빚고 이를 맛있게 즐기기 위한 방법을 탐구하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이다. 나는 술을 빚으며 우리의 일상이 다시 회복되기를 기다릴 것이다. 그 때가 오면 다시 한 번 멋진 연극을 관객들께 차려드릴 것이다. 글.그림 | 송재영 (www.facebook.com/jogakbaram) 극단 조각바람 프로젝트 동인 일상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담아내는 것에 관심이 있다. 극작 <뒤뚱이의 편지>, <979의 일기>, <플라워가든>, <아일랜드> * 위 내용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주최하는 2020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예술로(路) 협업사업의 일환으로 시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