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차(비중 1.024) - 조각바람 이 글은 주제에서 벗어났다고 보아야 할지 모르겠다. 조각바람은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함께 연극을 창작하는 예술단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각바람을 구성하고 있는 이들은 개별적인 각각의 존재이자 나에게 무척 소중한 사람들이다. 한 사람씩 지면에 글로 담아내고 싶지만 나의 필력과 글재주가 미천하기도 하고, 이번 프로젝트에 많은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만큼 언급하지 않을 수 없기에 양해를 구하면서 글을 잇고자 한다. ‘조각바람’은 아내가 지은 이름이다. 그는 아동청소년극을 만드는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다. 좁쌀같이 속이 좁아터진 나와 달리 그는 대범하고 담대한 마음을 갖고 있다. 둘이 머리를 맞대고 우리가 하고 싶은 작업과 지향해야 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술을 마시며 의논하다가 아내가 내놓은 이름이 조각바람이었다. 그가 이름을 설명하기를 우리라고 하는 작은 조각이 관객의 마음에 잠시 머물렀다가 스쳐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행복할 것 같다는 이유를 들었다. 나는 썩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재단이나 예술위원회의 지원 사업에 선정되려면 이름부터 뭔가 그럴싸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J 씨어터컴퍼니, 연극예술창작소 J 같은 이름을 내놓다가 짜친다고 면박을 당했는데 아내가 내놓은 이름은 진지하면서도 정체성을 잘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꾸 정이 들었다. 나와 아내 그리고 같이 첫 작업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는 배우 임영준이 의기투합해서 연극전문단체를 기치로 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았다. 그 때가 2014년 겨울이었는데 나는 대학원 3학년이었고 아내는 같은 대학원 2학년, 영준이는 학부를 막 졸업한 신출내기였다. 배우 임영준은 연극판에서 유명한 그 분과 동명이인이다. 극단을 만들고 처음으로 제작했던 청소년극 <아일랜드>를 하면서 대학원 후배를 통해 소개를 받아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는 나를 처음 봤을 때 이상하게 생긴 형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작품을 위해 엠티를 갔던 때였는데 그의 말에 사람들이 마구 웃었다. 그는 언제나 솔직하고 투명한 마음을 가진 소년의 모습을 가지고 있어서 그의 말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사실 나도 이상하게 생겼음을 잘 알고 있으니까 뭐 개의치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그는 우리와의 작업을 시작으로 아동청소년극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지만 해당분야에서 오랫동안 공부했던 다른 배우들보다 더 많은 어린이극과 청소년극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어린이를 늘 생기 있게 유지하는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작품을 하고 연기자로서 인정을 받았으면 좋겠다. 고무적인 것은 짧지만 드라마의 단역으로도 출연했고 유명한 보험광고에도 얼굴을 내비치며 서서히 얼굴을 알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하루빨리 유명해졌으면 좋겠다. 그런 날이 오면 나는 내가 하던 모든 일을 그만두고 그의 로드매니저가 될 것이다. 영이와 지혜도 빼놓을 수 없다. 둘은 우리와 오랫동안 작업해오고 있는 배우다. 그들은 나에게 선배이기도 하면서 동갑내기인데 극단에서 작업을 시작할 때 먼저 섭외를 하기 위해 나는 이들에게 열심히 전화를 걸어댄다. 영이는 여성의 인권과 평등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가 쓴 논문의 주제도 청소년이 아닌 ‘청소녀’를 대상으로 한 프로젝트에 관한 것이었고 이후 꾸준히 페미니즘에 관심을 두고 활동을 이어왔다. 현재 배우이자 예술교육가로서 활동하는 것에 더하여 ‘한국공연예술자치규약(Korea Theatre Standard, KTS)’의 필진이자 강사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지혜는 영유아극에 매우 관심이 많은 배우다. 아마 내가 아는 배우 중에 가장 많은 수의 영유아극에 참여했거나 관여하였고 지금은 단체를 만들어서 아주 어린 아이들을 위한 연극을 활발하게 창작하고 있다. 그의 열정은 실제로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인데 영유아극 한 편을 보기 위해 비행기 표를 끊고 해외에 나간 적도 있다. 조각바람과 관련지었을 때, 서로의 관심사가 다양하면서도 접점을 이루고 같은 분야에서 공부하고 활동하다보니 자연스레 어울리며 작품을 함께할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감사하고 분에 넘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강릉이 낳은 불세출의 스타이자 국악과 양악의 리듬이 몸에서 끝없이 샘솟는 연희꾼 솔지, 조각바람의 작업에 온 마음을 다해 참여해주는 미술감독이자 일러스트레이터 마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명을 비춰주는 철민이형, <플라워가든>의 초연에 출연해준 주리, 지현, 수민, 현호 등 수많은 이들이 언제나 우리의 곁에 있어주었다. 이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여러 물줄기가 강을 이뤄 바다로 나아가는 것처럼 이들이 우리의 물길을 만들어주어서 관객과 잘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이들을 품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진 연출가이자 아내 정은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아마 그가 아니었다면 조각바람은 공허한 바람에 그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위와 같은 사연으로 나의 진실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일일이 한 사람씩 만나서 술을 전달하고자 하였으나 그러지 못하게 되어 유감이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직접 만나지 못한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만든 술이 너무 맛있어서 홀짝홀짝 마시다보니 거의 떨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술맛을 알기 전에 아내와 마시에게 한 병씩 전달하였으니 그나마 위안이 된다. 아직 전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어 마지막 원고가 끝나면 다시 술을 빚으려 한다. ‘한 사람을 위한 술’이 누굴 위한 프로젝트인지 흐릿해졌으나 중요한 사실은 우리의 바람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의 조각이 바람을 타고 당신에게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는 순간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 말이다. 글.그림 | 송재영 (www.facebook.com/jogakbaram) 극단 조각바람 프로젝트 동인 일상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담아내는 것에 관심이 있다. 극작 <뒤뚱이의 편지>, <979의 일기>, <플라워가든>, <아일랜드> * 위 내용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주최하는 2020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예술로(路) 협업사업의 일환으로 시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