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파도타기 : 커피와 음악> 동그라미 커피를 만드는 사람 그는 내게 처음으로 핸드드립 커피를 맛보여 준 사람이자 나의 커피 선생님이기도 하다. 그에게 커피를 직접적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그가 커피를 내리는 모습, 커피에 대해서 하는 말들, 그리고 내게 내려 준 커피를 옆에서 수없이 마시며 어쩐지 나는 그에게서 커피를 배운 것만 같다. 그가 커피를 내릴 때 옆에 서 있으면 “이거는 반칙인데” 하며, 드립퍼에서 처음으로 떨어진 커피 한 방울을 작은 에스프레소 잔에 주고는 했다. 아주 진하고 달콤한 캬라멜 시럽의 맛 같기도 하고 신맛도 고소한 맛도 단맛도 그 한 방울 안에 다 담겨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굉장히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 한 방울을 마시면 입안에 오래도록 머문 커피 향 때문인지 물을 마셔도 커피 내음이 났다. 그 이후로도 자주 나는 그의 옆에 서 있었다. 그의 커피를 마시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나의 고정관념 속에 존재하던 쓰고 텁텁한 커피 맛은 점점 사라지고 커피에는 새콤한 과일도 짙은 시나몬도 달콤한 초콜렛도 화려한 꽃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가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며, 그가 들려주는 커피 이야기를 들으며, 그렇게 나의 커피 세계는 넓어져 갔다. 그리고 오랜만에 그의 앞에 마주 앉았다. 언제부터 커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요?일단은 그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제가 언제부터 커피를 마셨는지에 대한 얘기부터 먼저 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10대 때 용돈이 생기면 뭘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주로 음반을 사거나 카페를 다녔던 것 같아요. 제가 살았던 속초라는 지역은 커피보다는 파르페나 과일 주스 그런 쪽의 소비가 더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 커피를 전문으로 하는 카페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그 카페들에 가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어요. “커피를 마시는 행위 자체가굉장히 멋스럽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어른 놀이처럼 느꼈을 수도 있겠네요. 카페라는 공간의 감수성을 좋아했던 거죠. 고등학교 3학년 때 수능을 보고 입시 원서를 쓰러 카페에 들렀는데, 그때 처음으로 ‘헤이즐넛’이라는 커피를 마시고 충격을 받았어요. 커피가 쓰지 않고 향기롭다는 생각을 처음 했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커피를 더 열심히 마시기 시작했어요. 커피를 만드는 방식에 관심이 있진 않았나요?카페라는 큰 카테고리에 관심이 많았던 거죠. 저는 강릉 산골짜기에 조그맣게 있던 ‘테라로사’에서 처음 핸드드립 커피를 맛보고 커피 맛에 대한 것보다는 카페에 있던 모든 것들이 다 신기하게 보였던 것 같아요. 다른 카페들과는 좀 달랐어요. 도구들부터 시작해서, 로스터기나 생두, 생두가 들어 있는 마대 같은 것들도 거기에서 처음 봤어요. 그리고 도시에 와서 핸드드립 전문 카페에 커피를 마시러 다니면서 커피에도 고급사양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땐 도시에서 BAR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한계가 점점 보이기 시작했어요. 힘들다는 생각이 점점 커질 때쯤, ‘커피를 배워야겠다’라고 마음을 정하고 스승을 찾아 나섰어요. 유명하다는 곳 여러 군데를 다 찾아 가봤는데, 만족감이 크지 않았어요. 그러다 우연히 ‘차’부터 시작해서 ‘커피’를 하고 있는 스승을 소개로 만났는데 그 당시 맛 보았던 커피 중에 제일 좋았어요. 커피의 퀄리티가 좋았다는 것보단 전체적인 밸런스가 좋았던 것 같아요. ‘카페를 해야겠다’라고 처음 마음먹었을 때, 사람마다 행동으로 옮기는 방식이 다 다르잖아요. 왜 하필 핸드드립을 먼저 배우러 간 거죠?저한테는 오히려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적인 게 더 편하고 보편적인 도구였어요. 그러다 보니까 아날로그적인 핸드드립에 더 매력을 느꼈죠. 머신 커피보다는 핸드드립 커피가 훨씬 더 내가 생각하는 커피에 가깝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핸드드립을 하는 이유는 커피의 ‘맛’이 가장 큰 건가요?처음에 생각할 때는 ‘더 맛있는 커피다’라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점점 단순히 맛의 비교보다는, ‘우리나라 사람들한테는 머신 커피보다는 핸드드립 커피가 더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바뀐 것 같아요.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음식문화는 강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서양의 문화보다는 예부터 익숙했던 차 쪽의 문화가 더 맞지 않을까. 핸드드립은 우리의 차 문화에 가깝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도 에스프레소보다는 핸드드립이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어느 정도 커피를 배웠을 때 내가 이제 카페를 오픈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나요? 어느 날, 4년 동안 매일 제가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던 사람이 저한테 한마디를 했었는데 그 말이 결정타였던 것 같아요. “이제 커피 팔아도 되겠네.” 라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의 기준을 나중에 물어봤어요. 안정적이라는 거에요, 커피 맛이. 처음엔 날에 따라 커피가 들쭉날쭉한데 언젠가부터는 커피가 안정화를 거친다 라는 걸 느꼈었나 봐요. 그래서 그 때 그런 얘기를 듣고 용기를 한번 더 낼 수 있었어요. ‘아 이젠 준비할 수 있겠구나.’ 처음부터 커피를 너무 좋아해서 직업적으로 선택을 한 거고 카페를 오픈 한 거잖아요. 하지만 실제 직업이 되어 경제활동을 해야 할 때는 단순히 커피를 즐길 때와는 분명 다를 텐데, 차이점이 생겼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요즘에 루틴이란 말을 하잖아요. 저도 저만의 루틴이 있어요. 오자마자 앞치마를 입고 그날의 테스트해야 할 원두가 있거나 아니면 가장 맛보고 싶은 원두를 항상 먼저 아이스로 내려 마시면서 하루를 시작해요. 그건 오롯이 나만을 위한 커피죠. 그럴 때는 정말 카페 하길 잘했다 생각을 많이 해요. 퇴근하고 집에 가면 와이프가 나한테 커피 냄새난다고 하거든요. 향이 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그렇게 바뀌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오히려 저는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게 되니까 더 행복해지는 방향 쪽으로 흘러간다는 걸 느껴요. 카페를 운영하기 이전에도 계속 다른 형태의 가게를 운영했다면, 카페를 운영하면서 이전과는 손님들과의 관계가 달라진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있나요? 핸드드립은 오픈된 공간에서 모든 걸 다 보게끔 만들잖아요. 그 누구도 뒤돌아서 뒤를 보여주면서 핸드드립을 하지는 않아요. 앞에서 해주죠. 그래서 우리가 카페를 만들 때도 핸드드립 바에 무게 중심을 뒀던 게 ‘마주 보는 것’ 그걸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마주 본다’는 말 좋은 것 같아요. 신뢰가 있는 사람들만 마주 보는 게 가능하잖아요. 감출 것이 없고, 앞에서 다 보여줄 수 있는 솔직함을 가졌을 때. 핸드드립 커피 같은 경우에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게다가 그 과정들이 모두 오픈되어 있고. ‘커피 한 잔에 어떤 시간이 담겨있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단순히 내가 어떤 ‘순간’을 마시는 게 아니라. 마실 때, 그 과정을 지켜본 사람에게는 어떤 ‘믿음’ 같은 것이 생기기도 하는 것 같아요. 이 카페 안에서 핸드드립으로 인해서 맺어진 관계들은 단단한 연대감 같은 것들이 훨씬 더 많이 생긴 것 같아요. 핸드드립 바에 앉아서 커피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그 앞에서 커피를 내려주는 사람에게 일종의 ‘관계’가 발생하는 거죠. 저는 핸드드립이 주는 행위에서 굉장히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작업에 나가서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리면서 저한테는 핸드드립이 일종의 ‘명상’으로서 기능을 하는 것 같단 생각을 했어요. 대부분 핸드드립을 마시는 사람들을 보면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카페에 오래 앉아있어요. 그리고 더 긴 시간 커피를 마시고. 사람들 자체가 더 여유로운 것 같아요. 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럴 확률이 더 큰 것 같아요. 손님의 입장에서는 핸드드립이 차지하는 여유로움, 천천히 흐를 수 있는 슬로우 푸드 같은 그런 것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봐요. 내 커피를 아껴주고 좋아해 주는 손님이 오면 나도 모르게 핸드드립을 할 때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은 항상 받거든요. 엄청 집중도가 높아지는 거죠. 좋은 원두가 있을 때면 내 커피를 좋아해 주고 이곳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에게 내려서 맛보여주고 싶어요. 꿈꾸는 카페의 이상적인 모습이 있나요?‘오롯함’ 이 있는 걸 하고 싶어요. 커피의 오롯함이 있는. 커피 향으로 채워질 수 있는 그런 공간에서 커피를 하고 싶어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정확히 말하면 ‘커피 오마카세’를 하고 싶어요. 다양한 커피를 느낄 수 있는 공간에서의 커피. 그리고 그 커피에 페어링 될 수 있는 것들을 함께 내는 것. 내가 판단 했을 때, 이 커피에는 이런 디저트. 오늘 같은 날씨에는 요런 거. 오늘 옷을 이런 걸 입었는데 이런 색의 옷에는 이런 커피가 어울릴 것 같고, 이런 커피에는 이런 커피잔이 더 어울릴 것 같은. 그렇게 뭔가 연관성을 가지고 갈 수 있는 맞춤형 커피를 하고 싶어요. 오히려 대중적이기보다는 더 사적이고 개인적인 커피를 하고 싶은 것처럼 느껴지네요. 커피에 더 집중하고 싶어요. 결국, 자기만의 커피를 만들어야 해요. 그럼 각각의 바리스타의 개성이 들어간 커피가 더 좋은 커피라고 생각하는 건가요?네. 그게 더 좋은 커피라고 생각해요. 물론 좋은 원두에서 시작하는 건 디폴트값이고요. 이미 좋은 원두를 가지고 다양한 방법으로 나가면 좋겠죠. 그럼 ‘자유로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그런 ‘룰’이라는 건 전문가들이 그래도 이렇게 했을 때 제일 맛있다고 권장하는 방법이긴 하잖아요. 근데 나는 그게 잘못된 생각인 것 같아요. 환경은 계속 변하는데 그 변화에 대해서 반응하지 못하게 만들어요. 커피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다 다른데 그걸 고정화한다면 정말 재미없는 작업이 된다고 생각해요. 일하는 친구들에게 커피를 알려주면서제일 많이 하는 말이 “힘을 빼.”란 말이에요.그게 ‘자연스러움’이라고 생각해요. 힘을 뺀다는 건 그만큼 내가 편안해지고 환경에 동화되는 일인데 룰에만 갇히다 보면 그런 것들을 자꾸 방해하게 하죠. 물론 처음에 입문은 그렇게 하더라도 자기만의 특화된 무언가를 만들 때는 그걸 버려야 하는 순간이 오는 건 분명해요. 당신이 추구하는 커피가 있다면 어떤 커피인지 말해줄 수 있어요?세대별로 놓고 봤을 때 커피 1세대들이 있고, 커피를 시작하는 요즘 세대들이 2세대라고 한다면, 저는 1.5 세대라고 생각해요. 제가 하고 싶은 커피는 그 1.5 세대의 커피인 것 같아요. 내가 맛보았을 때 기분 좋았던 커피는 향도 있으면서, 그윽하면서, 바디도 좋으면서, 피니쉬도 좋은 매끄러운 커피에요. 근데 그 전에 내가 맛보았던 커피들은 거칠고, 파괴적이고, 쓰고, 강하고 이런 커피들을 맛보았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미래를 미리 가볼 순 없어요. 하지만 경험한 과거를 토대로 우리는 분명 미래로 가고 있거든요. 나는 지금 내가 맛보았고 내가 경험했던 커피에 내 미래의 커피를 더한 커피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전에 다혜 씨가 했던 말 중에 인상적인 말이 있었어요. 사람은 태어나서 얼마 동안은 색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흑백사진을 보면 그때의 기억이 있어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이 든다는 말이요. 커피도 그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전에 그림을 그리는 친구도 에스프레소는 유화 같고, 핸드드립 커피는 수묵화 같다고 말했어요. 커피는 단순히 음료 이상의 무언가를 사람들에게 전해 준다고 생각해요. 강산에 씨 노래 중에 ‘책을 보고 차를 마셨더니 내 입안은 동그라미 맛이 되었네.’라는 가사가 있어요. 그래서 ‘동그라미 맛’이 뭐냐고 물었는데 대답을 안 해줬어요. 근데 내가 그걸 우연히 커피 속에서 찾은 거죠. 자기가 하고 싶고, 만족스러운 것들을 했을 때의 느끼는 맛이 동그라미 맛인 것 같아요. 근데 그 동그라미 맛이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커피의 맛이에요. 그게 딱 어떤 커피 맛이라고 단정 짓는 게 아니라, 동그라미 맛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맛있는 맛.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맛. “나는 그런 커피를 하고 싶어요.” 당신의 취미에 대해 듣고 싶어요. 어렸을 때 LP로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느꼈던 강렬한 느낌을 잊을 수 없어요. 그게 시작이었어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건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하는 조건으로 아버지가 그 당시 샤프에서 나온 오디오를 사주셨는데 CD체인기가 6개 들어가는 미니 컴포넌트였어요. 새벽 5시까지 음악을 듣다 잔 적도 많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CD를 사 모으며 음악을 듣기 시작했어요. 그전에는 음악을 어떻게 들었어요?큰누나가 가지고 있던 LP가 12장 정도 있었어요. 그때가 중학교 2학년 때였는데, 그 LP를 듣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어요. 그 LP 중에 기억나는 건, 카펜터스The Carpenters 그리고 맨하탄스The Manhattans라는 블루스 그룹, 그리고 조지 윈스턴George Winston의 <December> 앨범 3장이 기억나요. 또 저는 MTV 세대라서 눈으로 보는 뮤직비디오를 보기 시작한 세대였어요. 그것도 신선한 충격이었죠. 그때부터 해외 음악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어요, 뉴키즈 온더블락New Kids On The Block이라던가. 어떻게 보면 지금처럼 음악을 이렇게 쉽게 들을 수 있던 세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음반을 산다는 것 자체가 음악을 듣기 위한 방편이었던 거죠. 그거 외에는 없으니까. 그 당시에는 카세트테이프, CD, LP가 다 공존하던 시대였어요. 근데 어느 순간 LP에 그려져 있는 아트웍에 눈을 뜨게 되었어요. 음반을 살 때 그 그림까지도 같이 사는 느낌이었어요. 그 후에는 음악을 집에서 듣는 것보다는 어떤 좋은 카페라는 공간에서 들었을 때 느끼는 감정이 배가 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처음엔 혼자 집에서 음악을 듣다가 어떤 장소에 가서 음악을 듣기 시작한 건가요?음악을 틀어주는 카페들이 많았어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서 듣는다는 거 자체가 너무 좋았어요. 그때부터는 혼자 듣는 음악보다는 사람들하고 같이 들을 수 있는 음악적 취향으로 발전한 것 같아요?주로 공간에 어울리는 음악에 중점이 많이 맞춰지긴 했죠. 예를 들면 카페 같은 공간에서 록을 틀면 왠지 좀 어색하고 집중되지 않으니까 배제하게 되고 뭔가 나지막이 읊조리는 음악들, 그런 감정 전달이 확실하게 들리는 음악들을 좋아하게 된 거죠. 그때 들었던 블루스나 재즈 같은 걸 들으면 아련한 생각이 들고 좋아지는 듯한 편안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아무래도 음악 선택의 폭이 좁아지긴 했지만, 그런 음악 장르 안에도 워낙 음악이 많고 다양하니까요. 그럼 카페를 하고 싶었던 것도 어떻게 보면 커피로 사람들하고 소통하고 싶은 것처럼 느껴지는데, 음악도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부분이 큰 것처럼 느껴져요.누군가와 음악을 나누면 파생이 되거든요. 옛날에 친구들하고 CD계 라는 걸 했었는데 고등학교 때. 각자 한 달에 CD 1장을 산 다음에 일주일에 1장씩 돌려 듣는 거예요. 그럼 한 달이면 4장의 앨범을 들을 수가 있어요. 같이 CD계를 했던 친구들의 음악 취향은 다 비슷했나요?아니요. 다 달랐어요. 저는 운 좋게 제 공간을 가지고 계속 음악을 들을 수 있었지만, 그때의 친구들은 음악과 점점 멀어졌어요. 일도 해야 하고 바쁜데 굳이 계속 음반을 사야 할 필요충분조건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까요. 카페에서도 스트리밍 이외에 여전히 CD나 LP로도 함께 음악을 트나요?내가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걸 나 스스로 자각하고 인식하고 싶은 마음? 게을러지지 않기 위함일 수도 있고요. 그리고 특별함이 느껴지는 날에는 CD나 LP로 음악을 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해요. 다시 그럼 음반들을 사 모으고 있나요?네 다시 조금씩 사고 있는데,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대부분 해외배송인데, 가격이 확실히 비싸죠. 국내 라이센스 앨범이 나오면 싼데, 오리지널을 사면 두 배 이상에 가까운 돈을 지불해야하니까. 근데 여전히 고민은 있어요. 앞으로는 아예 차별화된 쪽의 음악을 틀어주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럼 그 행위도 더 부각되고 듣는 사람도 현실하고는 더 다른 느낌이 있지 않을까. 음질이 공간감을 다르게 느끼게 하는 걸까요?오히려 디지털화되면 될수록 아날로그에 대한 그리움이라든지, 특별함이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확실히 내가 들어도 너무 달라요. 모든 행위 자체도 다르고. 판을 꺼내서 닦아서 올려놓고 플레이를 시키고 핀을 올리고 소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그 소리를 또 듣고 그 소리가 끝나면 다시 또 했던 행위를 반복해서 핀을 들어서 제자리에 놓고 판을 뒤집고 다시 판을 올리고 소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최대한 그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려고 핀을 아무리 미세하게 맞춰도 저는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부드럽게 음악이 재생되느냐 안 되느냐의 차이일까요LP를 보면 홈이 파여 있는데 그 부분이 음악이 시작되는 부분이에요. 그 부분에 가깝게 놓으면 적게 돌고 음악이 나오고 그 부분과 멀리 떨어진 곳에 놓으면 더 많이 돌고 나서 음악이 나와요. 근데 스트리밍이나 CD 같은 경우는 클릭과 동시에 엄청난 반응 속도로 음악이 나오잖아요. 하지만 LP를 틀고 나서 그 비어있는 시간이 저는 너무 좋아요. 왜냐하면, 내가 이 행위를 하고 있다는 거 자체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니까요. 그 돌아가는 시간 동안 미세한 잡음이 나오는데 이건 LP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여백’인 것 같아요.음악의 ‘여백’을 느낄 수 있어 좋은 것 같아요.” 음반을 사면 이 음악은 평생 간직하는 음악이 되는 거잖아요. 평생이란 말이 좀 그렇지만, 이 음악은 질리지 않고 계속 좋아할 것 같은 음악이 있나요?쳇 베이커Chet Baker의 <Sings>에요. 쳇 베이커의 음악을 들으면 모든 감정이 다 있는 것 같아요. 기쁨, 슬픔, 아쉬움, 그런 모든 감정이 다 녹아서 음악 속에 내려져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쳇 베이커는 트럼펫터인데 노래를 한다는 것이 새로웠죠. 근데 저는 이상하게 노래 잘하는 가수는 싫어요. 자연스럽게 부르는 가수들이 좋아요. 예를 들면 유재하 같은 경우 예전에 방송 심의에 걸렸던 이유가 가창력 부족이었어요. 근데 좋잖아요. 자연스럽잖아요. 쳇 베이커가 그런 것 같아요. 그냥 가사도 다 들릴 정도로 단순하고 편하고. 자기 트럼펫과 자기 목소리, 자기 인생이 다 같았던 것 같아요. ‘저 앨범은 정말 모든 사람이 다 들었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어요. 저는 때가 되면 LP의 위치를 바꿔요. 여름이 되면 밥말리Bob Marley가 앞에 와있고, 한여름을 지나가면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Buena Vista Social Club이 와있고, 가을이 오면 항상 쳇 베이커Chet Baker가 와있는 게 여기에서의 저의 루틴이에요. 얼마 전에 가을이 와서 이제 쳇 베이커가 전면 위치로 나와 있어요. 마지막으로, 삶에서 ‘취미’라는 부분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요즘 스스로 그런 질문을 던지긴 해요. 왜냐면 점점 일이 바빠지다 보니 다른 것들을 하지 못하니까 그럴 때 ‘내 취미는 뭘까?’ 이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아요. 삶에서 취미를 따로 떼어내서 설명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제 삶에서 취미는 연속성을 가져요.” 독립적인 취미를 통해 힐링하고 힘을 얻기보다는 유기적으로 연결된 삶의 일부분인 것 같아요. 동그란 LP판을 올려놓고 음악이 흘러나오기 전의 기다림을 좋아하는 사람. 작고 동그란 원을 수없이 그리며 커피를 내리는 사람. 따뜻한 조명과 나지막이 흘러나오는 음악, 그리고 그 안에서 자기만의 동그라미 커피를 만들어가는 사람. 커피도 음악도 그의 동그라미 세계 안에서는 부드럽게 곡선을 그려가고 있었다. 글 | 김다혜 (www.instagram.com/daldahye)아날로그를 기반으로 한 사진 작업을 하고 있다. 사라지는 것, 위태로운 것에 온도를 더하는 고민을 이어오고 있으며, 개인이 가진 이야기를 통한 연결에 관심이 많다. 2020 <BLUE LETTER> 프로젝트 2019 <사물의 기억> 개인전2018년부터 KT&G 상상마당 아카데미 SAC에서 클래식 프린트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 위 내용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주최하는 2020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예술로(路) 협업사업의 일환으로 시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