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파도타기 : 당구와 음악> 좁은 문틈 사이로 어른들의 세계를 구경하던 어린 소년은 이보다 완벽한 구슬치기는 없다고 내심 감탄한다. 매끈한 큐대를 들고 반짝반짝한 공을 치는 모습, 그리고 공이 부딪힐 때마다 들리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경쾌한 소리들. 소년에게 그곳은 더없이 완벽한 세계였다. 소년은 커서 당구선수가 되어 세계를 누비지만, 그가 보는 곳은 언제나 흩어지고 모이던 공이 잠시 멈춰진 곳, 그곳이었다. 처음 당구에 흥미를 느끼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아주 어릴 때 살던 동네에 어떤 건물 1층에 당구장이 있었는데 1층에 있으니까 이렇게 문틈으로 그 안을 볼 기회가 있었어요. 녹색 그 천 위에 반짝반짝한 구슬이 네 개가 막 굴러다니고 어른들이 아주 곧은 나무 같은 거로 공을 탁탁 치는데, 어린 나이에 그게 충격적으로 다가오더라구요. ‘너무 재밌겠다. 저거 나중에 내가 해볼 수 있으면 꼭 해봐야지’ 당구를 처음 본 게 그때였어요. 거기에 제가 좋아하는 게 다 있더라구요. 제가 구슬치기를 아주 좋아했는데 크고 반짝반짝한 구슬이 녹색 당구대 위에서 왔다 갔다 하고. 그리고 어릴 때 남자아이들은 매일 칼싸움 놀이 같은 걸 하잖아요. 산에 가면은 곧은 나무를 구하러 다녀서, 나무를 깎고 다듬어서 이거 내 칼 이러면서 놀고는 했는데, 그 큐는 나무로 만들어진 완전한 형태였어요. 아이들 입장에서는 구슬치기와 칼 싸움을 결합한 완벽한 놀이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네요. 지금도 물론 그렇긴 하지만 당구장 자체가 초등학생이 가기에는 벽이 있잖아요. 가더라도 고등학생 정도는 되야 갈 수 있을 텐데. 그렇죠, 미성년자가 자유롭게 당구를 치기 시작한 게 이제 20년이 좀 넘었어요. 25년 정도 되었어요. 그럼 십 대 때는 당구장 출입이 안 되는 거였네요?학생들은 출입하면 안 되죠. 교외 지도라는 게 있어서 만화방 이런 데를 선생님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다녀요. 제가 고3 때, 한 당구장에서 3월부터 11월 대입고사보기 전날까지, 딱 아홉 번을 교외 지도에 다 걸렸어요. 뭐 저는 공부를 포기했던 사람이었으니까. 선생님이 때리면 좀 맞고 그래도 그게 무서워서 다른 당구장, 멀리 있는 당구장 가거나 그러지는 않고 학교 아래 가던 당구장만 갔어요. 한 우물을 팠죠. 초등학교 때 처음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가 고등학교 때 처음 가신 거네요?본격적으로 다닌 건 17살 때 처음 갔던 거 같아요. 그때 저보다 잘 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한테 배워서 조금씩 하다 보니까 점점 흥미가 생겼는데 비용이 많이 드니까 자주 갈 수는 없었죠. 다른 스포츠나 구기 종목 같은 경우에는 학교에 팀이 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코치와 감독이 키우고 그런 식으로 전문 스포츠 선수가 되는 과정이 있는데, 당구는 어떤 식으로 프로 선수가 될 수 있나요?저 같은 경우는 당구를 독학으로 계속하다가 물론 동네 선배들이나 잘 치는 분들한테 조금씩 조언도 받긴 했지만, 정체기가 딱 오더라구요. 정체기가 장기간 왔어요. 레벨업이 안 되는 거죠. 슬럼프라고도 볼 수 있는데 그런 상태가 지속되길래 ‘더 잘하기 위해서는 좋은 선생님을 찾아가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해서 선생님을 찾아갔죠. 박병문 선생님을 찾아갔는데 그 선생님 밑에서 한 7년 정도 사사를 받았어요. 대한민국 최고의 선수셨고, 당구장을 운영하셨을 때니까 그 당구장에서 일도 하고 짬 내서 당구 연습하고 배우기도 하고 그렇게 했죠. 그땐 다 도제식으로 그렇게 했어요. 보통 당구를 좋아해도 취미 정도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을 텐데, 처음부터 당구 선수를 목표로 생각하셨던 거에요? 일단 고등학교 3학년 때쯤, 당구를 잘 치는 당구장 주인이 돼 볼까. 그럼 삶이 지루하지 않을 거 같은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20대 초반에 세계적인 당구선수들이 한국에 처음으로 온 적이 있어요. 등촌동 88체육관에 세계적으로 최고의 당구 선수들이 와서 시범 경기를 했어요. 그걸 보러 갔죠. 경기를 직접 보고 더 자극을 받으셨겠네요?‘당구를 치는데 저런 해법이 있구나’ 이런 데에 눈을 새롭게 떴죠. 그리고 ‘당구를 잘 치면 저 사람들하고 시합하러 외국도 나갈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도 하게 되고. 그래서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연습을 많이 했죠. 그 정도로 빠지면 누워서 눈 감아도 당구공이 계속 굴러 갈 것 같아요.일단은 누웠을 때 당구공이 천정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게 당연해요. 그 단계를 거치지 않고선 당구가 늘 수가 없어요. 그건 뇌 속에서 뭔가가 일어나는 거거든. 일단은 어떤 단계에서는 꼭 거쳐야 하는 현상이죠. 박병문 선생님의 제자로 계시면서 당구 경기에 출전하기 시작하셨나요?그때 박병문 선생님은 대한민국 최고의 당구 선수셨어요. 선생님이 저를 선수회에 입회비를 내주셨어요. 제가 포기하려고 했는데 마음을 써주신 거 같아요. 선수회라는 조직은 국가에서 인정하는 그런 조직은 아니고 우리들만의 조직이었어요. 그래도 그 당시에는 힘이 있는 조직이었죠. 아끼는 제자셨나 봐요.그때는 제가 한동안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막일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선생님이 전화하셔서 “얼굴 좀 보자” 하시길래 오랜만에 만났어요. 한여름에 뙤약볕에서 막일을 하니까 제 얼굴이 새까맣게 타 있었죠. “뭐하냐” 물으시길래 “이러 이러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걸 하냐. 더 열심히 연습해야 할 때.” 근데 뭐 그때는 담뱃값도 아쉽고 그럴 때니까 일을 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하지만 선생님이 그렇게까지 마음을 써 주셨으니 방랑했던 마음을 다시 잡았죠. 선수로 경기를 할 때는 어떠셨어요? 당구가 더 재미있으셨어요?긴장이 되긴 하지만 순간순간이 재미는 있었죠. 그런데 내 실력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약간의 즐거움을 얻긴 해도 현주소를 바로 알게 되기도 했죠. 과거의 프로선수들은 프로 대우를 받을 데가 전혀 없었어요. 지금은 이제 프로 6팀이 생겨서 1팀에 7명 되는 선수들이 있어요. 그 선수들은 연봉을 받고, 경기에서 잘하면 상금을 받고 하니까 당구를 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어졌죠. 그런데 제가 할 당시에는 당구장을 해서 수입을 얻거나, 아니면 언더그라운드에서 갬블을 하는 거죠. 선수로서의 서포트는 없었던 거네요.네, 거의 없었죠. 없다고 보는 게 맞아요. 그럼 언제부터 프로 당구 팀이 생기기 시작했어요?지금은 대기업에서 하는데 신한금융투자, SK렌터카, TS샴푸 같은 곳에서 서포트를 해요. 정식 프로가 생긴 건 2019년도부터에요. 과거의 프로들은 말만 프로지, 자기의 좋은 경기력을 어디서 펼친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대우를 받을 수 없었죠. 대회를 준비하시는 게 힘드셨겠어요. 생계를 같이 고민해야 한다면.그니까 평소에 그냥 늘 연습을 해야 하는 거예요. 손님상대로 게임 치면서 연습 삼아서 치고. 잘 치는 사람하고 쳐야 실력이 늘지 않아요? 원래 그렇긴 하지만 나보다 잘 치는 사람이 내 환경에서 없을 수 있잖아요. 그러면 이제 마음을 잘 세팅을 해야죠. 내가 핸디를 몇 개 잡아주고 하지만 그래도 조금 더 집중해서 경기라는 생각으로 해야죠. 그래야 연습 효과가 조금이라도 있으니까. 선수 생활은 언제까지 하셨어요?열심히 20년 동안 전력하고 이제는 조금 더 생업에 집중했죠. 선수 생활을 놓은 게 한 10년이 넘었네요. 지금은 경기도에서 하는 도민체육대회라고 있는데 거기에만 출전해요. 1년에 1번, 올해 고양시에서 했어야 되는데 코로나 때문에 취소가 됐어요. 선수 생활 그만두시면서, 아카데미 운영과 중계 해설을 하시게 된 건가요?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어요, 당구 경기 해설을 하다 보니까 선수로 뛰는 건 조금 그렇더라구요. 두 개를 다 하는 건 어색한 거 같아서. 그리고 할 만큼 했으니까 큰 미련도 없었어요. 중계는 2012년부터 했어요. 요새 SBS 스포츠에서 생중계를 계속해요. 요새 대회 일정이 있는 시즌 인가요?네, 지금 프로 당구 경기가 계속 단기간 안에 열리고 있어요. 코로나 때문에 외국 선수들이 한 번 방문 하면 체류 기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기간 안에 많은 대회를 소화 해야 하는 그런 일정이죠. 올해 같은 경우 6번의 투어를 하고 마지막에 챔피언결정전이라는 걸 해야죠. 시즌은 내년 3월에 끝나요. 보통 5월에 시작해서 그 다음 해 3월에 끝나는 10개월 정도에요. 당구 프로선수는 연령대가 어떻게 되나요?가장 폭넓은 연령층이 다 똑같은 자리에서 경쟁하는 것이 당구의 장점인데, 20대부터 60대까지 현역의 프로선수들이 있어요. 그래서 재밌는 것은 아버지하고 딸하고 시합에서 만난 적이 있어요. 상대 팀, 적으로 만난 거예요. 와. 선수들의 성별도 나이도 정말 다양하네요.그렇죠, 근력이 제일 젊었을 때 잘 발휘 할 수 있는 그런 종목들이 있는데 당구는 나이가 들어도 몸 관리만 잘하면 60대에도 20대 못지않은 그런 경기력을 가질 수 있어요. 오히려 오래 묵을수록 더 잘 하는 게 당구 경기의 특징이에요 선수로 직접 경기를 하는 것과 지도를 하시는 건 다를 텐데, 지도하시는 건 어떠세요? 아 그것도 역시 재밌을 땐 재밌죠. 잘 전달이 되는 느낌을 받으면 신이 나고, 잘 이해를 못 하고 그럴 때면 힘들어지죠. 그럴 때는 내가 어떻게 해야지 더 정확히 전달될 수 있을까? 이런 문제를 생각해야 하니까 ‘이 일도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생각하죠. 당구를 잘 친다고 해서 잘 가르치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공부도 잘한다고 좋은 선생님이 되는 건 아닌 것처럼요. 전달의 문제나 표현의 문제가 있으니까. 근데 굉장히 좋은 선생님이라는 얘기를 주위에서 들었어요. 아주 작은 팁만 줘도 실력이 확 늘어난다고 하던데. 당구란 게임은 관찰을 잘해야죠, 공이 움직이는 현상을 잘 관찰 해야 해요. 이것도 세월이 지나 보니까 요령이 생긴 거지, 타고나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많은 사람들과 당구 얘길 해보고 당구를 공부하고 케이스를 반복해서 겪다 보고 그래서 데이터가 모인 게 아닐까요. 당구 치시는 분들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잘 맞았을 때의 손맛이 있다고. 그렇죠. 쾌감이 있죠. 근데 그 쾌감이 결국은 뇌에서 나오는 거거든요. 도파민 물질이 분비되는 거잖아요. 뇌가 그렸던 대로 됐을 때. 더 반복하고 싶겠죠 자연히. 신체조건보다는 집중력이 더 중요한 거죠.그렇죠. 연습도 중요하고요. 잘 치는 사람들의 경기는 집중력에서 경기의 승패가 결정되는데. "당구는 그래서 모든 이에게 공평한 경기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이건 몸에 장애가 있는 사람도 심각한 장애가 아니면 잘 할 수 있어요. 여성도 남성 못지않은 그런 단계에 갈 수 있고요. 그래도 아무래도 여자보다는 남자들이 당구를 많이 치긴 하잖아요. 저도 어릴 때는 운동을 좋아했어요. 축구도 좋아하고 야구도 좋아하고 다 좋아했는데, 근데 제가 키가 작고 왜소했거든요. 그런데 축구하면 매일 골키퍼 시키고, 야구하면 외야수 시키고 이러니까 조금 설움을 받았다고 할까. 근데 당구는 딱 시작하고 나니까 쟤가 나보다 덩치가 크고 뭐 이렇더라도 특별히 쟤가 나보다 유리할 게 없구나 하는 게 보이더라구요. 제 아카데미 원생 중에 할머니 한 분이 있어요. 나이 70에 당구장에 처음 들어오셨어요. 그날부터 바로 레슨을 시작하셔서 그분이 지금은 이제 80이 되셨어요. 제가 중간중간에 변화되는 것들을 여쭤보거든요. “선생님 요즘은 당구 치고 나면 어떠세요?” 하면 처음에는 “아유 집에 가면 너무 피곤해서 바로 그냥 곯아떨어져요” 숙면을 취하신대요. “아-참 좋은 일입니다.” 한동안 또 시간이 지나서 “선생님 요즘엔 좀 어떠세요.” 하면은 “아유 요즘 집에 가면 천장에 당구공이 왔다 갔다 하고 계속 그래요” “어, 선생님 그거 아주 좋은 현상입니다.” 왜냐면 그게 뇌가 활성화된다는 거거든요. 또 한참 지나서 여쭤봤어요. “선생님, 제가 머리가 좋아졌어요.” 이러시는 거예요. “왜요?” 이러니까 “제가 예전에는 집에서 나오면 가스 불을 켜 놓고 왔나 잠그고 왔나 그게 기억이 안 나서 심지어는 나왔다 다시 간 적도 있는데, 그 정도로 깜빡깜빡했어요. 근데 지금은 상황이 아주 명확하게 또렷하게 기억이 나요.” 이 말씀을 하셨어요. 그러니까 노인성 질환, 치매라 그러죠, 대표적인 게. 그거에 당구만큼 좋은 게 없어요. 그분께도 삶의 활력이 되어서 좋을 것 같아요. 요즘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못 나오신다고 힘들어하셔요. 실력도 많이 느셨어요?실력은 저도 그렇고 여사님도 그렇고 둘 다 만족은 못 할 정도의 실력이죠. 그렇지만 그분도 최선을 다했고, 저도 한다고 했으니까요. 그래도 당구 실력보다 다른 얻은 게 많으니까 그런데 좀 더 가치를 둬야하지 않을까, 기억력도 또렷해지시고. 할머니가 당구장 오셔서 큐대 잡고 당구공 째려보면서 당구 치는 모습을 상상해봤는데 왠지 멋있을 것 같아요.제 느낌이지만 그분이 처음에 오셨을 때는 그냥 할머니셨는데 계속 오시면서 당구 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점점 젊어지시는 느낌, 그런 느낌을 받았고 멋이 있으셨어요. 지금 당구 아카데미에 오시는 분들의 연령대가 그렇게 다양한가요?그렇죠, 10대부터 있어요. 저처럼 당구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은 얼마나 배워야 해요?당구에 입문해서 쓰리 쿠션 경기를 하고 싶다 그러면 최소 6개월은 배워야 하고, 쓰리 쿠션 그 전 단계에 있는 보통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4구 경기가 하고싶다 그러면 한 3개월 하시면 돼요. 근데 당구는 그냥 옆에서 “이거 쳐, 저거 쳐” 이렇게 해서 첫날부터 게임을 할 수가 있어요. 핸디를 어떻게 정하기 나름이거든요. 내가 만약에 쓰리 쿠션 40개를 놓고 친다면 두 개만 놓고 시작하는 거죠 뭐. 그렇게 경기는 할 수 있어요. 그럼 쓰리쿠션과 4구 차이점에 관해서 설명해주실 수 있으세요?쓰리쿠션은 6개월 정도는 기초 수련을 해야 하는데 기초 수련이 된 사람이 공을 익히는 기간, 기본 원리를 깨닫는 기간이 사람마다 편차는 있지만 한 2년 정도는 열심히 해야지 공이 어떻게 다니는지 보여요. "공의 길이. 공의 길을 계속 보다 보면 당구대 안에서만큼은 그게 자연이지.그 자연을 나중에 보게 돼요.그런데 어려움을 막 맞서면서 보내면 그게 반드시 어려운 시간만 있지는 않고,아주 흥미로운 시간도 포함되어 있어요. 거기에 이제 희로애락을 겪으면서 길을 가는 거죠." 아카데미를 운영하다 보면 취미로 당구를 치는 분들과 늘 같이 계신 거네요. 소통도 많이 하고. 사실 분리된 직업들도 많이 있잖아요. 당구를 좋아하는 공통점 하나로 경계 없이 소통할 수 있고 경기도 할 수 있고 그렇게 서로 어울릴 수 있는 부분이 정말 좋은 것 같아요. 그럼 선생님의 취미는 어떤 거예요?제 취미야 음악이죠. 음악은 언제부터 좋아하셨어요?10대 때죠. 초등학교 고학년쯤 누나가 라디오로 팝송을 들으면 같이 듣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이 노래 좋다’ 하는데 Deep Purple의 Highway Star를 처음 듣던 날, 그 때부터 록 음악을 좋아하게 됐죠. 그럼 당구 안 치실 땐 늘 음악을 들으셨겠어요.아니요. 당구 치면서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하죠. 당구 칠 때는 음악을 안 틀어놓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집중할 것 같았는데 아니군요.저는 원래 당구보다 음악을 먼저 좋아했으니까. 근데 유럽에서 열리는 월드컵 세계대회를 출전 했는데 이 사람들이 음악을 쫙 틀어놓고 시작을 하는 거예요. 좀 편안한 클래식 음악도 틀어놓고 그리고 잔잔한 팝송도 틀어놓고 너무 좋더라고요 저는. 그리고 어릴 때도 음악 틀어놓고 당구 치는 걸 좋아했어요. 당구장은 당구 치는 소리 말고는 조용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대개 음악을 틀어요. 볼륨을 약하게 하고 틀죠. 예민한 사람들은 그 소리도 신경을 쓰는데 사실 그런 경우는 이제 당구에 집중해야 되는데 자꾸 딴 데 집중하는 거라고 봐야죠. 몰입된 상태라면 음악 소리도 잘 안 들려요. 지금도 연습하실 때 늘 음악을 틀어 놓으시나요? 레슨 할 때도 늘 작게 틀어놓고 레슨 하죠. 주로 좋아하시는 장르인 딥 퍼플Deep Purple 같은 록음악을 틀어 놓으시나요?아유 그건 못 틀고 당구장에는 그냥 편안하고 잔잔한 거 위주로 틀어요. 요즘 주로 BGM으로 틀어놓는 음악은 컨트리 쪽이죠. 컨트리에서도 장르가 많은데 얼터너티브(alternative) 컨트리라고 할까. 편안한데 들어본 노래는 아닌 것 같은. 컨트리 밴드 중에서 60년대, 70년대 그 시대 쪽 사람들의 낭만적인 음악들이 있는데 세대가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그런 음악들이 좋아요. 주로 어떤 기기로 들으세요? 지금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틀기도 하고 주로 애플뮤직으로 들어요. 계속 새로운 음악도 들을 수 있고 원하는 음악이 다 있으니 아주 편안하죠. 롤링스톤스도 듣고. 내가 능력 되는 한 좋은 소릴 들어 보고 싶다 하는 욕구는 아직도 있어요. 그런데 이번에 아카데미를 옮기면서 애지중지했던 스피커가 있었는데 여기 놓을 공간이 없어서 그걸 처분했어요. 빈티지 모델이에요. 혼Horn 스피커였는데 나팔 모양의. 극장에서 쓰던 모델인데 아주 커요. 처분할 때 되니까 소리가 더 좋게 들리더라구요. 사람의 욕심이 참 우습죠. 있을 때 잘 해야지. 그런 스피커는 블루투스 기능 같은 건 없잖아요. 그럼 그때는 앨범으로 들으셨나요?그거는 전용 케이블로 해서 들을 수가 있어요. 어차피 CD나 LP 이런 장비도 없고 과정이 힘들잖아요. 근데 애플뮤직은 역시 편하죠. 애플뮤직에서 나오는 음원을 얼마나 잘 표현하느냐 오디오 성능을 거기에 맞추는 거예요. 그동안 오디오 변화가 많으셨어요? 오디오 변화는 조금씩 계속 있었죠. 처음엔 당구 쳐서 돈 따가지고 샀어요. 어릴 때 동네 당구장에서 밤새워서 쳤더니 10만 원쯤 땄어요. 그래서 그 돈으로 청계천에서 샀던 것 같아요. 국산 앰프에, 국산 스피커인데 모델은 기억 안 나는데 크기는 좀 컸던 거 같아요 스피커가.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완전히 엉터리죠. 그다음에도 당구 쳐서 돈 버시면 계속 스피커를 사셨어요?이상하게 당구 쳐서 돈을 따게 되면 주로 취미가 그쪽이니까 돈을 거기에 쓰게 되더라구요. 지금도 애지중지하시는 스피커나 오디오가 있으세요?워낙 좋아하고 공들였던 스피커를 지금 떠나 보내서 지금은 어디 마음을 둘 데가 없어요. 새로 가져다 놓은 이 진공관 스피커는 전원도 안 켜 놓고 있잖아요. 이건 진공관으로 하나씩 연결을 시켜서 음악을 듣게 되는 거죠. 이 앰프는 너무나 우연히 제 손으로 들어왔어요. 거의 고물 취급받던 건데, 제가 보기엔 평범해 보이질 않았어요. 일산에 유명한 진공관 장인이 있어요. 그분한테 이걸 보여줬더니 이런 걸 어디서 주워왔냐고 하면서 성질을 내더라고요. 그래서 버리려면 버리고 고칠 수 있으면 손을 대주어라 했더니 싹 손 봐주셨죠. 근데 의외로 소리가 굉장히 좋아요. 지금의 최애 스피커가 이 스피커인가요. 내가 무거운 걸 이리저리 들고 다녀가지고 아무래도 그렇게 되었네요. 또 소리도 꽤나 맘에 들어요. 전에 쓰던 메인 스피커랑은 성향이 극과 극이라 그렇긴 해도. 그 스피커는 1미터 80? 85? 정도로 컸어요. 그걸 여기 두면 당구를 못 쳐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보냈죠. 이 스피커는 어떤 특징이 있어요?섬세하죠. 전 악기를 다 골고루 적절하게 표현해요. 하루속히 연결해서 들어야죠. 아이맥도 음악 틀려고 산 컴퓨터니까 애플 뮤직을 들으려면 애플 컴퓨터가 있어야 한다고 해서 샀어요. 애플뮤직에 본인의 플레이리스트를 가지고 있으세요?그럼요, 가지고 있죠. 애플뮤직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리는 그날부터 했거든요. 결국 좋은 음악들은 장르를 초월한 음악들이에요. 취미로 하면 안 되는 몇 가지 중에 항상 오디오 얘기가 있잖아요.아카데미 회원 중에 음악 좋아하시고 오디오에 한계까지 간 분이 계세요. 그분 댁에 놀러 가서 그런 소리 한 번씩 듣고 와요. 가면 금액을 말할 수 없는 정도로 오디오 세팅이 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그분도 저한테 정말 간곡하게 그러세요. “임 선생은 나처럼 되지 마.” 제가 그 뒤로 그 말을 깊이 새겨듣고 정말 좋은 소리가 듣고 싶을 땐, 그분 집에 가서 듣고, 평소엔 잔잔하게 백그라운드 음악으로만 들어요.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 가지고 계신 성향 내에서 당구와 음악이 닮아 있는 점이 있을까요? 당구의 스트로크를 스윙이라고 하잖아요. 스윙하기 전에 어드레스 단계에서 박자를 타야 해요. 그러니까 음악의 박자감이 있는 사람이 당구를 잘 치는 거죠. 그리고 이게 시각, 촉각 그런 감각을 쓰잖아요. 그런데 청각도 아주 중요해요. 큐대 공이 딱 맞을 때, 내가 만족한 소리가 나면 그 샷은 좋은 거예요. 청각이 깨어있어야 유리하죠. 공 맞는 소리, 쿠션에 공 부딪히는 소리, 그런 소리도 다 즐기는 거죠. 그래서 소리는 중요해요. 삶에서 취미가 갖는 의미가 있다면 어떤 건가요?당구는 저한테는 취미를 벗어나진 않았어요. 그러니까 내 취미는 사실 당구와 음악인 거죠. 당구를 업으로 하다 보니 타인한테 프로 소리도 듣긴 하지만 사실 당구도 저의 취미예요. 저한테 취미는 종교를 대신하는 거죠. 종교를 대신하는 게 저한테 당구였어요. "삶을 살아가는 방향, 그런 많은 것들을 당구에서 배웠죠, ‘당구를 잘 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하면 더 잘 칠 수 있겠다’ 근데 그게 삶하고 바로 연결이 되어 있어요. 그러니 악해질 수가 없죠." 당구에서 그런 걸 배웠던 것 같아요. 결국, 삶의 방향을 이끌어 주게 된 거 같아요. 끝없이 깊이 있게 파다 보면, 확실하진 않지만 어렴풋이 비슷한 그런 것들을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스스로 자신이 발견하게 되는 어떤 지점을 말씀하시는 거죠? “그렇죠. 그걸 내가 깨닫다 보면 다 깊은 곳 어딘가에서는 같은 걸 보는 거죠. 서로 다른 걸 해도.” 글 | 김다혜 (www.instagram.com/daldahye)아날로그를 기반으로 한 사진 작업을 하고 있다. 사라지는 것, 위태로운 것에 온도를 더하는 고민을 이어오고 있으며, 개인이 가진 이야기를 통한 연결에 관심이 많다. 2020 <BLUE LETTER> 프로젝트 2019 <사물의 기억> 개인전2018년부터 KT&G 상상마당 아카데미 SAC에서 클래식 프린트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 위 내용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주최하는 2020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예술로(路) 협업사업의 일환으로 시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