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아니오부정문으로 여는 아침이 싱그럽소 나비의 날갯짓이 서정으로 깃들고 모든 형태는 도형으로 그려지오 일련의 숫자로 표시되는 표정과 감정은 좌표의 꼭지점에서 연결되오 우리가 쓴 얼굴이 어느 지점에서 만나는지 정확한 계산은 필요하지 않소p.27 _어느 기호학자의 하루 거짓말일까 바다가 격자무늬라는 말p.38 _제페토의 숲장면을 스케치한다는 건 문구점에서 연필을 슬쩍하는 것 만큼 스릴 있단 얘기지가령 실직당한 아빠를 공원에서 마주칠 때의 동공이라거나 내가 사실 세탁소 아저씨의 딸이라 말하는 엄마의 성대라거나길에서 여자에세 뺨을 맞는 오빠를 본다거나 그여자와 같은 산부인과를 공유하는 언니가 비밀이라며 나에게 5백 원을 쥐여주는 사실을 연필로 그리는 순간들 말이야p.70 _연필책 소개 “사라지는 건 없어 밤으로 스며드는 것들이 짙어가기 때문일 뿐” 문학동네시인선 146번째 시집을 펴낸다. 2017년 『시인동네』를 통해 등단한 김희준 시인의 시집이다. 『언니의 나라에선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이다, 다. 김희준 시인. 1994년 9월 10일 경남 통영에서 태어났으니 올해로 만 스물여섯의 시인. 2020년 7월 24일 불의의 사고로 영면했으니 만 스물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시인. 그러하니 이것은 시인의 유고시집. 시인이 태어난 날이자 시인이 떠난 지 사십구일이 되는 날에 출간되어 시인 없이 어쩌다 우리끼리 돌려보게 된 시인의첫 시집. 이럴 수가 있는가 하면 이럴 수밖에 없음으로 하염없이 쓰다듬게 되는 시집. 이런 김희준 시인의 시집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 제목 끝 쉼표 하나 어떻게든 붙잡고 보는데 시인의 말마따나 그 어떤 이유로든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어떤 이유를 불문하고 뼈아픈 어처구니의 심정 속에 읽어나갈 수밖에 없는 시집, 그런 시집.